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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촉산]대나무의 섬 그 흔적을 찾아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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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유넷취재팀 작성일21-02-23 10:35 조회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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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촉산, 대나무의 섬 그 흔적을 찾아서

 


1.가야 시대와 조선을 이어 대나무의 군락지였던 활촉산의 오늘날 모습.jpg

가야 시대와 조선을 이어 대나무의 군락지였던 활촉산의 오늘날 모습

 

김해에 살지만 김해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우선 글 쓰는 나 자신도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김해에서 바다가 육지가 된 곳이 구석구석 보물 찾기처럼 숨겨져있다. 세상 속으로 드러났다가 잊혀지곤 한다. 그중 한 곳인 김해시 칠산면의 남쪽 끝에 있는 이동으로 그 여정을 떠나본다.

분명히 산이라고 알고 도착했는데 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민망한 언덕 앞에 서서 가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바다에 떠 있었을 섬, 활촉산의 정상부 모습.jpg

 ▲바다에 떠 있었을 섬, 활촉산의 정상부 모습

 

가야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곳 활촉산은 하나의 섬이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는 곤지도(坤地島)라고 해서 신라 떄 국도의 곤방에 있는 섬이라고 그렇게 불렀다고 하며 곤지섬이 꼰지로 변해버렸다고 하는 그 섬이었던 동산을 보자니 우거져 있을 산은 온데간데없고 세월의 유속에 그대로 바닥을 누렇게 드러누운 채 그럼에도 찾아온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3.임란 때 활촉대로 만들어진 대나무들.jpg

임란 때 활촉대로 만들어진 대나무들

 

곤지산(昆池山)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바다에 둘러싸인 이 섬에서 나는 대나무로 가야 시대에는 사냥과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나중 임란 때는 이곳에서 나는 조죽(鳥竹)을 활촉대로 만들어 통제영에 바쳤다고 해서 이 산의 이름이 활촉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이병태 전 김해문화원장이 쓴 김해지리지에서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정상에 올라가서 둘러보니 대나무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이 되었다.

 

4.활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정경.jpg

활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정경

 

산 정상에서 옛날에는 바다였을 칠산 이동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과거를 알고 오늘을 잘 지키면서 물려줄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역사의 일부분으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바다였지만 지금은 김해평야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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