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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기정 작성일19-11-21 16:28 조회586회 댓글0건 내용복사 즐겨찾기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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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어둠은 분명 무언가를
버스는 두 시간 뒤에 올 거라고 하네
마침 정류장 옆 과수원에는
사과가 익어가고 저녁 비가 부슬거렸네
발등을 타고 올라온 풀벌레 소리는
가느다란 울음을 어딘가로 옮기고 있었네
유리칸막이 옆으로 나란하게 붙은 비안개의 방
올 풀린 비가 담배연기처럼 떠돌았네
불안의 깊이가 다른 두개의 방은
똑같이 아득한 끝을 품고 있었네
투둑투둑 검은 소리들이 과수원을 덮쳤네
농익은 시간을 끌어안고 있는 둥근 지붕들
사과는 이제 조그마한 꽃 속으로 자신을 돌려보낼 수가 없네
한 세계에서 탈락되었을 때
추락한 깊이보다 높게 다른 삶이 튀어 오르겠지만
비오는 여름밤에 이미 단풍드는 세월도 있었네
멀리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고
빗줄기는 얼룩말처럼 반갑게 뛰어왔네
혼자 남은 정류장은 화난 소년처럼 금세 어두워졌네
그러나 닿고 싶은 곳이 있는 한 기다림은 유지될 것이네
푸른 어둠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지만
훅 하고 지나가는 향기뿐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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