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으로 평가받은 김해분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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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해닷컴정보 작성일12-10-13 08:14 조회552회 댓글0건 내용복사 즐겨찾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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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우리 풍 찻사발 선호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찻사발은 유형에 따라 나누어져 각기 명칭이 붙게 되었으며, 작품성에 따라 정중하게 모셔지고 있다.
그 중 ‘金海’가 새겨진 다완 등 김해다완의 명성은 이제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김해다완은 일본으로 건너간 후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은 차를 마시기에 좋고 모양을 돋보이게 하려고 찌그러뜨리거나 굽을 나누는 등 일본인의 기호에 맞게 주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납치해 간 솜씨 있는 조선의 도공들과 그 후예들이 일본에 정착해 활발하게 작업하던 시기임에도 김해에서 찻사발을 주문해 만들어갔다는 것은 어떤 변형된 형태의 주문에 대해서도 멋지게 빚어낼 수 있었던 ‘우리 도공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풍의 찻사발’을 일본인들이 얼마나 선호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20개 요장 분청사기 맥 이어
김해의 도자기를 이야기하려면 가장 앞세울 수밖에 없는 곳이 진례면이다.
1개 면 단위 지역에 80개 가까운 도자기 가마가, 그것도 정책적인 배려나 지원도 없이 자생적으로 모여들었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는 김해가 김해다완을 탄생시킨 분청의 산실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진례면을 기반으로 진영, 장유, 한림 등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그 숫자는 날로 늘어나 현재 관내에 120개의 요장이 들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분청사기(도자기)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미술사학자 고유섭(高裕燮) 선생이 일본인이 부르던 의미 모호한 미시마(三島)라는 명칭에 반해 백토분장과 회청색의 특징을 근거로 명명했다.
대부분 지방의 민요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의 특징은 백토를 바른 후 유약을 입히는 분장법과 인화, 상감, 박지, 귀얄, 철화 등 독특하고 다양한 장식기법에 있으며, 무엇보다 도예가 스스로 창작해낸 소박하고 솔직하면서 회화적이고 해학적인 표현방식으로 인해 미의 방향을 전혀 달리하는 활달한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한다.
거친듯하면서도 친근하고 오만한듯하면서도 순박한 분청사기는 그래서 서민적이고 예술적이다.
분청은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인 15, 16세기에 번성했으나 안타까운 것은 임진왜란 이후 다완을 중심으로 한 ‘김해분청’의 맥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사실이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전국에 흩어져 있던 도공과 학자들이 김해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 왕성한 활동으로 분청사기 본고장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야토기의 맥을 이어 발전하기 시작한 김해도자기는 경기도 이천의 청 ? 백자나 전남 강진의 청자와 달리 한국 도자기 사상 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으로 평가를 받으며, 김해를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대의 분청사기 도예촌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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