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강요하지마." 

"애비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라고, 당신이 나의 아버지라고. 

나는 입술을 비틀어 한껏 비웃어주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며 넓고 호화롭게 장식된 정원을 

걸었다. 와인 잔을 세게 움켜쥐는 것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차갑고 위선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인간을 등진 채, 그렇게 걸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고용인들을 보며 또 무슨 모임을 열어 나를 귀찮게 하려나 했 

더니, 그 목적을 단지 통보만 하다시피 한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정말이지 완전히 질려 버릴 

것만 같다. 오늘따라 빡빡한 수업을 견디고 돌아와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던 낯익은 뷰티샾 

직원들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서 기꺼이 얌전한 인형이 되어주었건만, 결국 이렇게 도망치 

지도 못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높고 긴 계단을 올라가서 스테인드글래스 현관문을 열었더니 벌써 들어온 나를 보고 한숨 

짓는 여자가 보인다. 

"아가씨, 체리주스 만들어 놨어요." 

다시금 밝게 웃음 짓는 유모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신고 있던 높은 힐을 벗어 

던지고 유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보다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언제나 무미건조한 나의 

메마른 가슴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포근한 품을 가진 여자.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고개 

를 파묻고 스스로 가둬버린 삶에 지쳐 축 늘어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예쁜 우리 아가씨, 이렇게 항상 웃으면 좋을텐데…." 

내가 웃는 게 그렇게 예쁜가요…. 

고개를 들고 언제나 웃음 지을 수 있는 환한 미소를 지닌 유모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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