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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양준혁과 선수협 사건 총정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준혁 작성일11-09-21 11:05 조회3,944회 댓글0건 내용복사  즐겨찾기 

첨부파일

본문

1. 서론

KBO 타자부문에서 대부분의 누적스탯 최다기록 보유자인
양준혁은 꾸준함과 노력의 대명사로 존경받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신뢰했고 은퇴 후의 다소 의외의 활동 역시 존중했다.

또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선수협을 창립하였다 하여
명예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악연이 생긴 선동열 전감독은
양준혁의 비교적 이른 은퇴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집중포화를
받았고 양준혁 역시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를 비난했다.
사람들은 양준혁이 세운 업적만큼 그를 신뢰했다.

양준혁 역시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걸 어려워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명예욕에 발끈하여 강병규가 양준혁을 디스.
처음에 사람들은 막장 이미지의 강병규를 신뢰하지 않았으나
뒤이어 자세한 정황을 밝힘으로써 선수협과 선동열 감독의
관계에 대한 전모가 야구팬들에게 역추적되고 파헤쳐지게 되었다.


2. 과거로 돌아가

양준혁은 대졸후 쌍방울에 지명되었으나 거부파동을 일으키고
군입대 후 다시 삼성에 지명받았다.
이 파동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쌍방울은 이미 사라진 팀이고
양준혁의 고향 팀에 대한 애정을 납득하여 야구팬들은
별다른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역추적 과정에서 양준혁이 과거 삼성입단
과정에서 편법을 쓴것도 모자라 군입대 기간동안 삼성으로부터
매달 100만원을 받은 것이 널리 알려지며 편법을 넘어 엄밀한
불법이 아니냐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었다.

또 아직은 신인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시절 자신의 안타성
타구를 실책으로 판정했다는 이유로 기록실의 문을 부쉈다는
사실 역시 팬들사이에 다시금 알려졌다.

이런 초창기 일화들로 양준혁은 자신에게 유리할때는 편법 동원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땐
견디지 못하며 스스로를 정의라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면을
의심하게 한다.


3. 해태로의 트레이드

98년 중견급 선수가 된 양준혁은 외국인 선수 제도의 도입으로
입지가 좁아진 내국인 선수의 입장과 관련하여 선수협을
계획하게 된다.
안그래도 삼성은 코리안 시리즈 우승에 대한 일념으로
해태 벤치마킹에 안달하던 상황.
위험 요소가 있는 선수를 보내버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며
양준혁+곽채진+황두성+20억<->임창용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이에 양준혁은 '삼성은 배신자' 드립을 치며 은퇴선언을 한다.
일개 구단과 선수의 관계가 아니라 입단 당시부터 모종
거래가 있었으니 얄궂다 하겠다.

김응룡 감독의 설득으로 해태에 복귀하지만 안그래도 오기 싫었던
팀에다가 1년 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은터라 오히려 선수협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상황이 되었다. 양준혁은 본격적인 선수협 창립에 들어간다.


4. 시작부터 파국으로 치달은 선수협

99년 해태에서 생활하게 된 양준혁은 각 구단의 선수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사람을 모았고 9월의 올림픽 예선전 모임,
11월의 한일 슈퍼게임 모임 등으로 의견을 모아갔다.

드디어 이듬해 1월 21일 63빌딩에서 역사적인 선수협 창립총회
갖기로 한다.
그러나 구단의 반대와 회유작전은 진작부터 진행되어
양다리를 걸치려는 이중적인 마음과 이기심이 팽배한
시작부터 불안한 모임이었다.
회장에 먼저 입장하는 팀은 구단으로부터 보복당한다 하여
서로 입장조차 미루고 떠넘기는 형국이었다.

겉으로는 선수협 LG 대표였지만 프락치로서 구단으로 지령을
받은 유지현은 삼성이 먼저 입장해야 LG도 입장할 것이며
선수단 숫자 역시 똑같이 맞추겠다고 하여 안그래도 싱숭생숭한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이에 삼성 대표인 김기태는 유지현과 멱살잡이를 한뒤
욕설과 폭력을 동원하여 자팀 선수단을 강제적으로 퇴장시켰다.
유지현이 삼성을 걸고 넘어진점, 어설픈 격투극을 벌인 점,
선수협의 대표 중 한사람이라면 무언가 각오가 있었을텐데
열받는다고 자팀선수단까지 억지로 데리고 퇴장한다는 건
넌센스라는 점에 미루어 김기태 역시 구단의 사주를 받은
프락치였으며, 쇼를 벌여 분위기를 망치도록 유지현과 사전에
계획했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원래부터 소극적이었던 현대에 이어 삼성 역시 퇴장함으로써
역사적이여야 할 선수협 창립총회는 자정을 넘겨 진행되었으나
파장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LG는 유지현이 변절했지만 김재현, 서용빈 등이 남아 참가
자체는 유지되었으며 이후 유지현은 구단 편에 선 보람도 없이
연봉조정에 승리했다는 이유로 강제은퇴 당한다.
94년 우승 삼인방인 김재현, 서용빈과도 갈라섰으나
함께 촌극을 벌인 김기태와는 사이좋게 코치를 하고 있다.

KBO는 총회에 참석한 75명 전원의 방출로 위협했으나
선수협의 활동을 잠정 중단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2000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5. 선동열과의 관계와 그의 입장

양준혁은 선수협을 준비하며 99년 11월 한일 슈퍼게임때
일본을 방문해 KBO 최고 레전드로 대우받는 선동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선동열은 일본의 정관과 규약을 가져다준다.

어느정도 간접적인 도움이야 줄 수는 있지만 당시 선동열은
일본에서 용병으로 뛰다가 은퇴를 결심하여 더이상
현역 선수라 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양준혁은 선동열에게 선수협에 가입하여 전면에 나서
후배들을 위해 '총대를 매달라'고 부탁한다.
선동열은 피해볼게 없는 위치라는 논리로.

10년도 지난일을 현재에 비유하면 학교나 팀의 직속 후배도
아니고 별다른 연고도 없는 이용규가 노조를 만들겠다고
일본에서의 오랜 용병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하려는 이승엽에게
현역 선수들의 노조에 가입하는 것도 모자라 전면에 대표로
나서달라고 했다면?
현재의 일로 비유하면 애초에 그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상황임에도 많은 야구팬들은 양준혁 말만 믿고
선동열을 현역 선수의 위치에 대입하는 오류를 범하며
그를 비난했다.

은퇴를 결심한 선수가 마땅히 현역선수들이 위주가 되어야
할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 뿐더러
복잡한 일에 휩쓸리기보다 오랜 선수생활 동안의 신변을
차분히 정리하고 추억할 권리가 선동열에겐 있다.

그러나 양준혁은 어쩌면 짐 떠넘기기라고 할만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도 아니라며
욕설을 하고 다녔으며 언론에서도 그를 거세게 비난했다.
나고야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은 이후로는 만난적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실제로는 창립총회 며칠 뒤인
1월 27일 선동열의 귀국길에 공항으로 마중나갔으며
그 자리에서의 인터뷰에서도 선동열은 심정적으로는
지지하나 참여는 어렵다는 완곡한 거절의사를 밝혔다.

귀국 후 선동열은 KBO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KBO 입장에
반하여 이승엽에게 가입을 권유하는 등 직접 참여할 입장은 안되나
심정적으로는 지지한다는 자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애초부터 태도가 확실했던 사람에게 배신자니 어쩌니 몰아붙이는 것은
'내 입장이 곧 선이고 정의다'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발로가 아닐까.


6. 2000~2001년의 상황과 양준혁의 변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00 시즌이 시작되고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 했으니 00 시즌 이후 선수협은 재결성과
활동재개를 시도하고 KBO는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 최태원 6인을 방출하나 오히려 구단에서 반발하고 문광부가
중재에 나서 방출 조치는 취소되고 선수협은 형식적인
단체로 남는 것으로 사태는 최종 결론난다.

비록 취소되었으나 KBO 차원의 방출 조치 경험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며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은 보복성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양준혁과 몇몇 선수들이 이전의 강성한 자세와는
달리 친구단적 성향을 나타내는 원인이 되는데 이것이 강병규가
비난하는 부분이다.
반정부적 성향의 청년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선고를 받고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풀려난뒤의 충격으로 우익인사로 변신,
정부찬양에 앞장섰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방출 조치 이후에 변절한 것은 결국 그 이전까지는 자신들은
S급 선수이기 때문에 설마 실제로 방출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가 실제로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는
위협에 겁먹었기 때문이며 S급 선수들은 KBO와 구단에 투항하여
화려한 생활과 명성을 이어갔으나 그들을 믿고 따랐던 수십명의
무명선수들은 강병규의 주장대로 실제적 피해를 입었던 것.
그러나 강병규처럼 어중간한 급으로 방출된 선수에게 양준혁이
해준 말은 '좀 잘하지 그랬냐'였다.


7. 양준혁의 자기포장과 끝나지 않은 악연

스스로 인정한대로 양준혁은 선수협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후
구단으로 돌아가 솔선수범했고 상황도 원만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변한 상태임에도 양준혁은 자신을 미화하는데
선수협의 이름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양준혁은 선수협 사건의 주동자로 FA미아가 될 뻔
했다고 말해왔지만 실제론 타구단 교섭 날짜 시작 당일
몇시간 만에 삼성과 계약했으며 실제로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FA미아 위기 운운한 것도 모자라 뉴욕 메츠에서
입단을 제의해서 고려했다고 말해왔으나 메츠에서 보냈다는
계약서는 오류로 인해 진위여부가 의심되는 상태.

어쨌든 고향팀에 돌아와 그는 영웅처럼 환대받았고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그때까지의 경솔한 언행도 아무렴 어떠나 싶었다.
그는 S급 선수이고 고향의 영웅이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데.

그러나 좋은 날만 가득할 것 같았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니 그가 선수협 투사로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수년 동안
디스하는데 이용했던 선동열이 2004년 삼성에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2005년에 감독이 된 것이다.

이건 마치 일진 때 괴롭히던 아이가 군대에 갔더니 선임으로,
취직했더니 직장 상사가 되버린 상황으로 양준혁은 웬만큼
잘하지 않으면 갈굼당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실력과 노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양준혁은
2009년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할때까지 S급 활약을 했고
선동열 감독도 잘하는 양준혁에게 굳이 억지스런 경쟁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 복귀하며 상황은 달라지니 2009년 급성장한
최형우가 주전 외야수(때론 지명) 자리를 차지하니 양준혁은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지명을 오가는 다른 외야수인
강봉규, 박한이, 오정복 등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몰린다.
게다가 기존 1,3루수인 채태인, 박석민도 조영훈, 조동찬이
1,3루로 출전할땐 번갈아 지명타자로 나오며 수비가 불가능해
지명으로 밖에 출장할 수 없는 양준혁에게 너무 많은 경쟁자가 생긴것.
공교롭게도 경쟁자들은 강봉규 외엔 양준혁과 경쟁하는 한때나마
맹활약했으며 양준혁은 2할 중반 타율에 3할초반 장타율로 고전했다.

물론 예전만큼 실력이 안되도 자팀의 레전드를 배려해주길
바라는게 팬들의 정서다. 그 마음에 부응해서 다른 감독이었다면
양준혁을 어느정도 배려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동열이 뭐가 예쁘다고 양준혁을 배려해주겠는가.
6,7월 두달 동안 거의 출장은 시키지 않으면서 1군에 데려다니자
양준혁은 굴욕감을 느낀다. 선동열로서는 최초의 복수인 샘이다.

그러나 양준혁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선졸렬이라 불리며 10년동안
정당한 이유도 없이 욕먹은 것에 비해 양준혁이 느낀 두달간의
굴욕감이 과한 처사라 할 수 있는지는 각자의 판단이겠다.
복수치곤 소박하다고 느끼거나 10년간 자신의 입장에 대한 변명
없이 인내한 선동열이 대인배라 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선동열은 10년만에 최소한의 명예회복을 했다.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는 법.
양준혁이 굴욕감을 견디고 선수생활을 지속하길 결정했다면
2011년에 주전으로 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굴욕을 느끼길 원하지 않았고 은퇴를 결정했다.
이전부터 연예계 쪽에 관심을 가졌었고 여기저기 러브콜
있었으니 오랄 곳 없다고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는 S급 선수였고 영웅이고 전설이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강병규가 선수협으로 인한 자기희생를 강조하고 공로를 과장하고
인간미를 포장하는 것에 발끈하여 사건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최익성, 김광현 등 역시 갈 곳 없는 옛 동지들이 강병규에게
동조하기 전까지는.
양준혁을 믿고 존경하던 팬들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그의 과거를 추적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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